옛날에 조지 오웰의 ‘1984’와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중 어떤게 더 현재를 잘 예지한것 같은지에 대한 내용을 본 적이 있었다.(인터넷에서) 그때 댓글들은 멋진신세계가 더 현재를 잘 반영한(잘 예견한) 작품이라는 글들을 많이 봤었는데, 이제서야 읽어보니 내생각은 조금 달랐다.
오히려 현재를 잘 예견한것은 1984이고 미래와 가까워지는것은 멋진 신세계가 아닐까 싶다. 신기한것은 이 미래를 예견한 현상들이 전체주의 내에서 나타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결국 민주주의도 어떤 수단으로써 정보를 통제하고 편향된 정보를 주입함으로써 인간이 그렇게 믿게 만드는 과정은 민주주의나 전체주의나 다를바가 없었다. 다만 그것을 행하는 주체만 조금 다를뿐인 것 같은데 의외로 민주주의 내에서도 이 효과는 대단한 것 같다.(결론은 조지오웰과 올더스 헉슬리를 잘 버무리면 현실..)
어쨌든 1984에서는 전체주의 사회 안에서 철저하게 미디어로 사람을 통제하는 반면에 멋진 신세계에서는 유전자 부터 조작한다. 물론 미디어도 통제하는데 그것을 감시의 수단으로까지 이용하진 않는것으로 보인다. 더이상 부모의 자궁에서 아이가 태어나지 않고 공장에서 아이를 생산하며 생산된 아이는 등급에 따라 다른 교육을 받는다. 최저 등급인 엡실론 등급의 아이들이나 베타/감마/알파 등의 각 등급별 아이들은 어릴적부터 자신의 등급이 최고의 등급이고 만족하며 행복하다는 사상을 주입받는다. 이를 통해 개개인의 삶이 충분히 만족스럽고 꼭 필요한 일이라고 인지하며 살게된다. 그리고 유전자적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예외 상황들은 철저한 무지와 쾌락을 부여함으로써 자신의 현실을 망각하게 만든다. 모두가 예외 없는 삶을 산다.
이런 사회와 대조점을 이루는게 야만인 보호구역인 말파이스이다. 이곳에서 베타 여성인 린다가 이곳에 낙오 되면서 갖게된 아이인 야만인 존이 이 사회에 녹아들면서 현실과 유토피아적인 삶을 비교하게 된다. 이 소설에서는 현실과 유토피아적인 삶을 비교하게 하기 위해서 이 야만인 ‘존’에게 언어를 부여한다. 아마 존이 야만인 보호 구역에서 사는 그냥 야만인 이었다면 결코 그를 런던으로 데려가지 않았을 것이다. 어차피 대화가 통하지 않기에... 그에게 언어와 그 언어를 통해 세익스피어 책을 부여함으로써 야만인이 사용할 수 있는 표현, 감정, 감수성을 극대화 시켰다. 작중에는 ‘야만인’으로 표현되지만 현실에 비교하면 존은 고등학습을 받은 고급 인력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멋진 신세계에서는 꽤나 현실적인 유토피아를 제시한다고 본다. 그리고 그것들을 제한함으로써 모든 불행의 싹을 잘라버리고 있다. 하지만 그 삶이 진짜 행복한 삶일까? 결국 통제된 삶 자체도 자신이 통제된다는 사실이 당연하게 여겨지거나 그 사실 자체를 몰라야만 행복할 수 있는 조건이 된다. 하지만 독자로 하여금 그 삶은 정말 유토피아적인 삶이라고 보기 어려울 수 밖에 없다. 우리는 저런식으로 통제를 받지 않으니까.
사실 이 책은 산지 벌써 2년이 넘은것같은데 이제서야 다 읽어봤다. 예전에는 재미없고 읽기 어렵게 되어있다고 생각했는데, 천천히 읽어보니 그렇지 않았다. 중간 중간에 세개의 씬이 번갈아가면서 돌아가는듯한 흐름때문에 읽기 힘들었던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리고 역시 내 두뇌로는 이해하기 힘든 부분들도 있었다. 맨 마지막의 결말도 그렇고... 이걸 보고나니 1984를 다시 읽어볼까 하는 생각도 든다.